고토 신페이 구택

고토 신페이 구택

이 장소는 고토 신페이의 생가입니다. 이 주택의 주옥(오모야)은, 미즈사와 다테가(家)가신이었던 신페이의 4대 전(前)의 조상이, 18세기 중기에 간소하게 지은 거주지입니다. 그 후, 신페이의 할아버지가 화장실과 창고를 증축, 지붕의 교체공사를 했으며 신페이의 탄생을 축하해 문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신페이의 아버지도 무사였고, 서당을 운영했습니다. 히로마(広間)에는「정직을 바탕으로, 예의를 지키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낼 것」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습니다.
신페이는 안세이4년(1857년) 6월4일 고토가(家)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신페이는, 성적이 우수하면서도 골목대장 기질이 있어서 부모님을 화나게 해 창고 갇히기도 했습니다.
신페이는 15세가 되던 해, 후쿠시마현 스카가와시의 의학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아이치현 병원에 취직, 24세로 병원장이 되었습니다. 그 후, 독일에서의 의학유학을 거쳐 국가의 위생국장이 되어 보건제도를 정비한 후, 정치가로 전신했습니다.
대만의 민정장관 및 남만주철도 초대 총재, 체신대신, 초대철도원총재, 내무대신, 외무대신, 도쿄시장 등, 수많은 요직을 역임했습니다. 도쿄시장시대에 입안했던 도쿄의 근대도시화를 목표로 한 8억엔의 대사업계획은「오부로시키」라고 불렸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후에는 내무대신겸 제도부흥원총재가 되어 일본의 부흥을 위한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100년 앞을 내다본 제도부흥계획은 막대한 예산 규모였기 때문에 정재계로부터 반대가 있어 당초보다 계획은 축소되지만, 7년 만에 근대도시 도쿄를 창출한 선견성은 지대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퇴임 후, 일본연합소년단(보이스카우트 일본연맹) 초대총장과 도쿄방송국(NHK)의 초대총재에 취임했습니다. 신페이는, 일본전국의 소년단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소년시절부터 유념해 온 신조(自治三訣)『사람에게 신세지지 않을 것. 사람을 돌볼 것. 그리고 보상을 바라지 않을 것』을 소년단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쇼와4년4월, 3번째 뇌출혈로 쓰러져, 교토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Materials


  • Shinpei Goto Boy Scout

  • 3rd year of junior high school

  • Goto Shinpei's speech

  • Ethics of politics Knowledge of the imaginary world

  • Goto Shinpei Memori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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