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마코토(まこと) 기념관·구택

사이토 마코토(まこと) 기념관·구택

이곳은 사이토 마코토의 생가가 있던 부지입니다. 조선총독을 사임한 마코토는 쇼와7년(1932년), 이곳에 고향사람들을 위한 문고(도서관)와 열람소를 만들었습니다. 문고는 철근 콘크리트 2층으로 지어진 도서관이며, 열람소는 일본간(남쪽)과 마코토가 귀성시에 머무는 양간(洋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쇼와38년(1963년), 부지, 구택, 서고 등 다수의 유품이 유족으로부터 미즈사와시(현 오슈시)에 기증되어 전시관이 완성된 쇼와50년(1975년)에 사이토 마코토 기념관이 개관되었습니다.
마코토는 안세이5년(1858년) 10월27일, 미즈사와 다테가(家)가신인 사이토가(家)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서당의 스승이기도 한 아버지에게 엄격한 지도를 받아, 10세에는 어른도 읽기 어려운 「4서5경」소독(素読)을 마쳤다고 합니다.
15세에 상경해 일과 공부를 병행했으며 이듬 해에는 해군병학 기숙사에 입학합니다. 6년 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27세에는 미국으로 4년간 유학을 갔으며 미국 및 사찰단으로 참석했던 유럽의 정세를 배워 국제감각을 익혔습니다. 41세에 해군차관에 발탁된 이 후, 군정가(軍政家)의 길을 걸어, 러일전쟁 이후, 49세부터 약8년간, 해군대신을 역임했습니다. 그 후, 이와테 현 출신의 총리인 하라 타카시로부터 조선총독을 의뢰받아 부임하자마자 폭탄공격을 당하면서도 10년간의 재임기간 중, 문치(文治)통치를 염두에 두고 민생의 안정에 노력했습니다.   
쇼와7년(1932년), 5·15사건으로 살해된 이누카이 총리의 후임으로, 퇴역 해군대장출신으로 온건한 인격을 가진 마코토가 75세로 내각총리대신에 지명되었습니다. 마코토는 정당 간의 대립을 억제하기 위해 거국일치내각(연립내각)을 만들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코토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및 국제협력의 정신을 중시해, 당시 기세가 등등했던 파시즘이나 군국주의에 대한 방파제로서의 역활을 완수하려고 노력했지만, 내각대신이 된 다음 해의 쇼와11년(1936년), 육군청년장교 등에 의해 습격을 받아(2·26사건) 79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Materials


  • Mr. and Mrs. Saito (Governor of Korea))

  • Saito Cabinet

  •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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